퍼즐 디자인
좋은 퍼즐이 주는 깨달음의 순간과, 그것을 만드는 규칙·단계·함정의 설계다.
목차 (8)
좋은 퍼즐은 풀리고 싶어 한다: 표현, 우아함, 포부
Tom Hermans의 How to make a good puzzle — An explorable explanation(2018, 원문 블로그)은 글 사이사이에 직접 밀어 볼 수 있는 소코반(Sokoban) 판을 끼워 넣은 인터랙티브 글이다. 같은 판을 조금씩 바꾼 두 버전을 나란히 놓고 어느 쪽이 더 잘 읽히는지 손으로 확인하게 한다. 글은 조언을 세 갈래로 나눈다. 퍼즐을 어떻게 보여 줄지(표현, presentation), 퍼즐을 얼마나 군더더기 없이 짤지(우아함, elegancy), 퍼즐 게임이 무엇을 노릴지(포부, aspiration)다.
| 갈래 | 조언 | 뜻 |
|---|---|---|
| 표현 | 퍼즐이 스스로를 설명하게 한다 | 밋밋한 사각형 대신 상자·목표 지점처럼 의미가 읽히는 그림을 쓰면, 건드려 보기 전에 어떻게 움직일지 짐작이 간다. 퍼즐 게임에서 그림의 가장 중요한 일이 이것이다 |
| 조각을 모두 보여 준다 | 같은 판도 1인칭으로 보면 어렵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쉽다. 퍼즐을 분석하기 가장 편한 시점을 고른다. 일부러 가리면 규칙을 배우기만 어려워진다 | |
| 우아함 | 가장 작은 판에 담는다 | 플레이어의 시간은 생각하는 데 쓰여야 하고, 떠올린 답을 입력해 확인하는 데는 적게 쓰여야 한다. 판이 작을수록 잘못 읽을 여지도 준다 |
| 붉은 청어를 두지 않는다 | 상관있어 보이지만 풀이에 쓰이지 않는 요소는 잡동사니다. 쓸모없어 보이던 것이 뜻밖의 방식으로 쓰이게 하는 편이 낫다 | |
| 가능성 공간을 이해한다 | 판이 클수록 가능한 상태가 늘어 어려워지지만, 그만큼 마구잡이 풀이도 막아 준다. 양날의 칼이다(아래 절) | |
| 포부 | 판마다 새로 가르친다 | 스도쿠는 푸는 법을 알면 모두 푼 셈이다. 같은 퍼즐을 길게 늘인 다음 판보다, 같은 규칙의 다른 면을 보여 주는 다음 판이 낫다. 그래서 판의 순서가 중요하다 |
| 야심 차게 만든다 | 핵심 규칙이 독창적일수록 퍼즐도 흥미롭다. 신비로운 세계와 이어지는 맥락은 계속 풀 동기가 된다. 약간 불친절한 것도 탐구심을 자극한다면 괜찮다 |
세 갈래를 한 줄로 줄이면 “좋은 퍼즐은 풀리고 싶어 한다”이다. 설계자는 플레이어를 속여 이기려는 상대가 아니라, 정답 쪽으로 은근히 밀어 주는 쪽에 서야 한다. 글의 예시 판은 모두 PuzzleScript로 만들어졌는데, 몇 줄의 규칙으로 소코반류 퍼즐을 만들고 브라우저에서 바로 돌려 볼 수 있는 도구라 퍼즐 아이디어를 시험하기에 좋다.
가능성 공간: 상태 그래프로 본 난이도
퍼즐의 가능성 공간(possibility space)은 퍼즐이 놓일 수 있는 모든 상태의 모음이다. 처음 배치가 상태 하나이고, 한 칸 움직이면 다른 상태, 되돌아오면 처음 상태다. 상자를 밀면 또 다른 상태가 열린다. 상태를 점으로, 한 수를 선으로 그리면 퍼즐은 그래프가 된다. 어떤 상태는 해답에 닿고, 어떤 상태는 되돌리기 전에는 어디로도 못 간다(상자를 구석에 밀어 넣은 소코반이 그렇다).
- 최소 수: 시작에서 해답까지 가장 짧은 길의 길이는 난이도를 재는 좋은 척도다. 정확히 세기는 어렵지만, 판이 크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을수록 공간이 커진다는 경향은 분명하다.
- 양날의 칼: 공간이 크면 어려워지지만, 공간이 작으면 아무 버튼이나 눌러 보는 것만으로 풀린다. 깨달음 없이 풀린 퍼즐은 만족을 주지 못한다.
- 도구와 플레이테스트: Rune Skovbo Johansen의 PuzzleGraph처럼 퍼즐의 상태 그래프를 그려 보는 도구도 있다. 다만 숫자가 사람이 느끼는 어려움을 다 말해 주지는 않으므로, Hermans도 결국 실제 사람에게 풀려 보는 일을 강조한다.
상태 그래프는 퍼즐의 모양도 보여 준다. 해답으로 가는 길이 외길이면 선형 퍼즐이고, 여러 길이 해답에서 만나면 해법이 여럿인 퍼즐이다. 막다른 상태가 시작 근처에 몰려 있으면 첫 수부터 함정이 많은 것이고, 해답 바로 앞에 몰려 있으면 거의 다 왔다고 생각한 순간 틀리는 퍼즐이다.
깨달음의 순간: 퍼즐은 손이 아니라 생각을 시험한다
퍼즐을 푸는 기쁨은 대개 한순간에 온다. 한참 막혀 있다가 “아,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하는 순간(아하 모먼트, aha moment)이 오면, 그다음 입력은 몇 초면 끝난다. 그래서 좋은 퍼즐의 해답은 알고 나면 짧다. 해답이 길고 지루한 입력을 요구하면 깨달음의 기쁨이 손의 수고에 묻힌다. 위 표의 “가장 작은 판” 조언이 여기서 나온다.
깨달음이 생기려면 플레이어가 처음에 품는 그럴듯한 가정이 하나 틀려야 한다. “이 상자는 길을 막는 장애물이다”라고 믿는 동안에는 안 풀리다가, “이 상자는 발판이다”로 바뀌는 순간 풀린다. 그러니 퍼즐을 만들 때는 “어떤 착각을 깨게 할 것인가”를 먼저 정하고, 판의 나머지는 그 착각이 자연스럽게 생기도록 놓는다. 손재주를 요구하는 장애물과 퍼즐은 여기서 갈린다. 실행이 어려운 것은 퍼즐이 아니라 액션이다.
Game Maker's Toolkit의 Mark Brown은 What Makes a Good Puzzle?에서 여러 게임의 퍼즐을 뜯어보며 이런 구조를 설명한다. 퍼즐 디자인 영상을 처음 찾는다면 여기서 시작하면 좋다.
규칙 하나를 끝까지 파기: The Witness, Baba Is You, Stephen's Sausage Roll
잘 만든 퍼즐 게임 중에는 규칙을 몇 개 두지 않고, 그 규칙에서 나올 수 있는 결과를 끝까지 파고드는 게임이 많다. 새 장치를 계속 더하는 대신 같은 규칙의 숨은 면을 하나씩 꺼낸다. Jonathan Blow와 Marc ten Bosch는 IndieCade 2011 발표 Designing to Reveal the Nature of the Universe(요약)에서 이 태도를 정리했다. “X가 일어나면 무엇이 따라오나”를 묻고 시스템의 구조를 들여다봐 핵심 아이디어를 찾은 뒤, 그것을 가장 깨끗한 형태로 드러내는 퍼즐을 고른다는 것이다. 요소를 조합해 경우의 수를 늘리는 방식과 대비된다.
- Braid·The Witness(Jonathan Blow): 발표 기사에 따르면 Blow는 규칙을 위에서 정하기보다 탐색하며 발견하고, 한 규칙을 세계의 모든 요소에 대어 보며 빈틈 없이 따져 본다. Braid에서 되감기에 영향받지 않는 물건은 녹색으로 빛나게 해 일관성을 지켰고, 그 기대를 일부러 비튼 퍼즐도 넣었다. 규칙을 따르면서도 뜻밖인 결과는 플레이어에게 정보가 된다고 본다. GMTK의 How Jonathan Blow Designs a Puzzle도 같은 주제를 다룬다.
- Baba Is You(Arvi Teikari): “BABA IS YOU”, “WALL IS STOP” 같은 규칙이 화면 위의 낱말 블록이고, 블록을 밀어 문장을 바꾸면 규칙이 바뀐다. 규칙 자체가 퍼즐 조각이라 가능성 공간이 규칙의 조합으로 넓어진다. 문장 규칙을 어떻게 구현하고 다듬었는지는 GDC 2020 발표 Reading the Rules of Baba Is You에 있다.
- Stephen's Sausage Roll(Stephen Lavelle, increpare): 소시지를 굴려 각 면을 정확히 한 번씩 굽는다는 규칙 하나로 게임 전체를 끌고 가며, 판마다 그 규칙의 새 귀결을 보여 준다. 튜토리얼 문구 없이 판의 배치만으로 가르친다. Lavelle은 위에서 말한 PuzzleScript를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이런 게임에서 판 하나는 “이 규칙에서 이런 일도 일어난다”는 문장 하나다. 같은 문장을 반복하는 판은 지우고, 새 문장을 말하는 판만 남긴다. Hermans가 말한 “판마다 새로 가르친다”와 같은 이야기다.
붉은 청어와 거짓 해답
붉은 청어(red herring)는 관련 있어 보이지만 풀이에 필요 없는 요소다. Hermans는 이것을 잡동사니로 보고 빼라고 권한다. 플레이어는 판 위의 모든 것이 쓰일 것이라고 가정하므로(작은 판일수록 더 그렇다), 쓰이지 않는 조각은 깨달음을 돕기보다 시간을 낭비하게 한다. 그 대신 처음에는 쓸모없어 보이던 조각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쓰이게 하면, 같은 의심이 오히려 깨달음의 재료가 된다.
거짓 해답(false solution)은 다르다. 거의 될 것 같은데 마지막 한 수에서 막히는 그럴듯한 길이다. 잘 놓인 거짓 해답은 플레이어가 품은 틀린 가정을 드러내 준다. 막힌 이유를 이해하는 순간 진짜 해답의 실마리가 보이기 때문이다. 둘을 가르는 기준은 “실패에서 배우는 것이 있는가”다.
| 붉은 청어 | 거짓 해답 | |
|---|---|---|
| 정체 | 풀이와 상관없는 요소 | 풀이의 요소로 만든, 거의 맞는 길 |
| 플레이어가 얻는 것 | 헛수고 | 틀린 가정이 무엇이었는지 |
| 쓰는 법 | 빼거나, 뜻밖의 쓰임을 준다 | 진짜 해답 바로 옆에 놓아 착각을 드러낸다 |
가르치는 순서: 도입, 변주, 결합
퍼즐은 혼자 있지 않다. 앞 판에서 배운 것이 다음 판의 전제가 된다. 대부분의 퍼즐 게임은 장치를 하나씩 따로 소개하고, 난이도를 올린 뒤, 이미 배운 다른 장치와 섞어 새 상호작용을 연다. Hermans가 판의 순서를 조심하라고 하는 이유다.
| 단계 | 판이 하는 일 |
|---|---|
| 도입 | 새 장치 하나만 있는 작은 판. 실패하기 어렵게 만들어 동작을 보여 준다 |
| 확인 | 같은 장치를 플레이어가 스스로 써야 풀리는 판 |
| 변주 | 같은 장치의 숨은 성질(반대로 쓰기, 두 번 쓰기, 막는 데 쓰기)을 꺼내는 판 |
| 결합 | 앞에서 배운 다른 장치와 섞어, 둘이 만나야만 생기는 일을 보여 주는 판 |
Portal이 좋은 예다. 프로젝트 리드 Kim Swift의 Thinking With Portals(Game Developer 2008년 1월호)에 따르면 팀은 개발 첫 주부터 플레이테스트를 했고, 설문보다 플레이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쪽을 믿었으며, 매주 처음 해 보는 사람을 새로 불렀다. 여러 테스터가 에너지 공을 두 번 꺾어 보내는 퍼즐에서 막히자, 팀은 그 퍼즐을 한 단계씩 소개하는 세 구간으로 쪼갰고 플레이어는 더 빨리 이해했다. 테스터가 설계자도 생각 못 한 방법으로 푼 것이 새 퍼즐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 이야기 쪽은 GDC 2008 발표 자료 Portal Post-Mortem에 있다.
퍼즐 게임에서 플레이테스트가 특히 중요한 이유는 설계자가 답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답을 아는 사람은 판이 얼마나 어려운지 느낄 수 없다. 퍼즐 판의 배치로 가르치는 법은 레벨 디자인 노트, 막힌 플레이어를 돕는 힌트 체계는 난이도·UX 노트에서 이어진다.
열린 퍼즐: 정답이 아니라 더 나은 답을 찾는다
Zachtronics의 SpaceChem, Opus Magnum 같은 게임은 정해진 정답 대신 목표만 준다. 플레이어는 부품을 놓아 목표를 해내는 기계나 프로그램을 짜고, 해내기만 하면 판을 넘는다. 대신 풀이가 끝나면 Opus Magnum이라면 비용·주기(cycles)·면적 같은 지표를 다른 플레이어들의 분포(히스토그램)와 함께 보여 준다. “풀었다”에서 끝나지 않고 “더 짧게, 더 싸게”가 다음 퍼즐이 된다.
- 정답이 여럿: 해법이 플레이어마다 달라서 남의 풀이를 보는 것 자체가 재미가 된다. 막혀도 답을 베끼기보다 자기 방식의 서투른 풀이로 넘어갈 수 있다.
- 설계자도 최적을 모른다: 판의 최적 풀이를 설계자가 다 알지 못한 채 내놓는 일이 많다. 닫힌 퍼즐처럼 정답 하나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탐색할 공간을 내주는 것이다.
- 여러 지표: 지표가 하나면 최적해가 하나로 수렴하지만, 서로 부딪히는 지표가 여럿이면(빠르면 비싸고, 작으면 느리다) 고를 만한 풀이가 여럿 남는다.
스튜디오의 설계 과정은 GDC 2019 대담 Open-Ended Puzzle Design at Zachtronics와 GDC 2013 발표 Ahead of the Curve: The SpaceChem Postmortem에서 Zach Barth가 직접 설명한다.
퍼즐이란 무엇인가: 정답이 있는 재미
퍼즐 디자이너 Scott Kim은 퍼즐을 “풀기 재미있고 정답이 있는 문제”로 정의한 것으로 자주 인용된다(Tracy Fullerton의 교재 Game Design Workshop 등). 이 정의에서 두 가지가 나온다. 정답이 있으니 플레이어는 “풀었다”를 확신할 수 있어야 하고, 재미가 있어야 하니 풀이 과정이 노동이 아니라 발견이어야 한다. 정답이 없는 문제는 장난감이나 전략 게임에 가깝고, 재미없는 문제는 그냥 일이다. Kim이 퍼즐을 만드는 생각을 설명한 강연으로는 Scott Kim takes apart the art of puzzles(EG 2008)가 있다.
위의 열린 퍼즐은 이 정의의 경계에 있다. 목표를 해내는 풀이는 분명히 있지만 “가장 좋은” 풀이는 정해져 있지 않다. 그래서 정답 확인(판을 넘음)과 끝없는 개선(히스토그램)을 둘 다 준다. 정답을 찾는 쾌감과 더 나은 답을 찾는 쾌감을 나눠 담는 셈이다.
- How to Make a Good Puzzle — An Explorable Explanation — Game Developer
- How to make a good puzzle (original) — Auroriax
- PuzzleScript
- PuzzleGraph — itch.io
- What Makes a Good Puzzle? — Game Maker's Toolkit
- IndieCade 2011: Jonathan Blow & Marc Ten Bosch — IndieCade
- Designing to Reveal the Nature of the Universe — Marc ten Bosch
- IndieCade: Inside Jonathan Blow's puzzle design process — Game Developer
- How Jonathan Blow Designs a Puzzle — Game Maker's Toolkit
- Reading the Rules of Baba Is You — GDC
- Thinking With Portals: Creating Valve's New IP — Game Developer
- Portal Post-Mortem (GDC 2008 slides) — Valve
- Open-Ended Puzzle Design at Zachtronics — GDC
- Ahead of the Curve: The SpaceChem Postmortem — GDC
- Scott Kim takes apart the art of puzzles — TED
- A Good Puzzle Game Is Hard To Build — Rock Paper Shotg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