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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 심리

몰입, 동기, 보상, 플레이어 유형처럼 사람이 게임을 계속하게 만드는 마음의 원리다.

목차 (10)
  1. 몰입: 도전과 실력이 맞을 때
  2. 자기결정성 이론: 유능감, 자율성, 관계성
  3. 내재 동기와 외재 동기
  4. 플레이어 유형: 바틀과 그 한계
  5. 게이머 동기 모델: 유형 대신 점수의 묶음
  6. 보상 일정: 왜 변동 비율이 가장 강한가
  7. 손실 회피와 그 밖의 인지 편향
  8. 루트 박스는 왜 논란인가
  9. 다크 패턴: 플레이어의 이익과 어긋나는 설계
  10. 재미와 참여는 같은 것이 아니다

몰입: 도전과 실력이 맞을 때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는 사람들이 무언가에 완전히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상태를 몰입(flow)이라 부르고, 1990년 책 『Flow: The Psychology of Optimal Experience』로 널리 알렸다. 몰입이 잘 일어나는 조건으로 그는 분명한 목표, 즉각적인 피드백, 그리고 과제의 어려움과 자기 실력 사이의 균형을 꼽았다. 몰입 중에는 자의식이 옅어지고 시간 감각이 달라진다. 게임은 이 세 조건을 의도적으로 갖추기 쉬운 매체라서, 게임 디자인 책 대부분이 이 이론을 인용한다.

몰입 채널: 실력과 도전이 비슷한 대각선 띠가 몰입 영역이다. 띠 위쪽은 도전이 실력보다 커서 불안하고, 띠 아래쪽은 실력이 도전보다 커서 지루하다. 도전을 조금 올리고 실력이 따라잡게 하는 계단 모양 선은 띠 안에 머문다몰입 영역(flow)불안(anxiety)도전이 실력보다 크다지루함(boredom)실력이 도전보다 크다플레이어 실력 →도전의 크기 →
도전이 실력보다 크면 불안하고, 작으면 지루하다. 그 사이 대각선 띠가 몰입 영역이다. 실력은 플레이할수록 자라므로 도전도 함께 올려야 띠 안에 머문다. 계단 모양은 새 도전을 내놓고 익숙해질 틈을 주는 흔한 리듬이다.

디자인에서 중요한 점은 실력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같은 난이도가 처음에는 불안을, 몇 시간 뒤에는 지루함을 낳는다. 그래서 난이도 곡선은 직선보다 긴장과 이완이 번갈아 오는 계단이나 물결 모양으로 그려진다. 새 적이나 장치로 도전을 확 올린 다음, 그것을 익힐 쉬운 구간을 둔다. 또 사람마다 실력이 달라 띠의 위치도 다르므로, 한 가지 곡선으로 모두를 띠 안에 넣기는 어렵다. 제노바 천(Jenova Chen)의 석사 논문 「Flow in Games」(2006)는 이 문제를 게임이 몰래 난이도를 바꾸는 대신, 플레이어가 스스로 강도를 고르는 선택을 플레이 안에 심어 풀자고 제안했다(디자이너의 생각 노트). 난이도 선택과 보조 기능은 난이도와 UX 노트에서 다룬다.

자기결정성 이론: 유능감, 자율성, 관계성

에드워드 데시(Edward Deci)와 리처드 라이언(Richard Ryan)의 자기결정성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 SDT)은 사람에게 세 가지 기본 심리 욕구가 있고, 어떤 활동이 이것을 채워 줄수록 스스로 하고 싶어진다고 본다. 라이언과 스콧 릭비(Scott Rigby), 앤드루 프시빌스키(Andrew Przybylski)는 2006년 논문 「The Motivational Pull of Video Games」에서 이 틀을 게임에 적용해, 플레이어가 느낀 유능감과 자율성이 즐거움과 계속하려는 마음을 잘 설명한다는 결과를 냈다. 이 작업은 릭비와 라이언의 책 『Glued to Games』(2011)로 이어졌다.

욕구게임이 채우는 방식깨지는 예
유능감(competence)또렷한 피드백, 성장이 보이는 도전, 실패의 원인이 이해되는 것왜 졌는지 모르는 죽음, 실력과 무관한 결과
자율성(autonomy)의미 있는 선택지, 자기 방식으로 푸는 여지, 강요되지 않는 목표한 가지 정답만 통하는 구간, 끝없는 강제 튜토리얼
관계성(relatedness)협동, 길드, 나를 알아보는 캐릭터나 다른 플레이어다른 사람이 방해물로만 느껴지는 매칭, 독성 채팅

이 이론이 디자이너에게 주는 쓸모는 “재미”라는 막연한 말을 점검 가능한 질문 세 개로 바꿔 준다는 것이다. 플레이테스트에서 지루하다는 말이 나오면,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쉬운지(유능감), 선택이 없는지(자율성), 혼자라고 느끼는지(관계성)로 나눠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내재 동기와 외재 동기

같은 이론에서 나온 중요한 구분이 내재 동기(intrinsic motivation)와 외재 동기(extrinsic motivation)다. 활동 자체가 즐거워서 하는 것이 내재 동기이고, 점수·보상·벌처럼 활동 바깥의 결과 때문에 하는 것이 외재 동기다. 게임은 원래 내재 동기의 대표 사례지만, 경험치 막대·업적·일일 보상처럼 외재 보상 장치도 잔뜩 쓴다.

심리학에는 이미 즐겨 하던 일에 외적 보상을 붙이면, 보상이 사라졌을 때 오히려 덜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연구가 있다. 이를 과정당화 효과(overjustification effect)라 한다. 효과가 언제 얼마나 나타나는지는 보상이 예상되는지, 실력에 대한 정보를 주는지 등에 따라 달라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있다. 디자인에서 끌어낼 만한 교훈은 두 가지 정도다.

  • 보상은 실력의 정보로 준다: “잘했다”는 신호로 읽히는 보상은 유능감을 키우고, 통제처럼 느껴지는 보상(“매일 접속해야 받는다”)은 자율성을 깎는다.
  • 보상이 놀이를 대신하지 않게 한다: 보상 막대를 채우는 일이 놀이 자체보다 커지면, 보상이 끝나는 순간 플레이도 끝난다.

플레이어 유형: 바틀과 그 한계

리처드 바틀(Richard Bartle)은 1996년 글 「Hearts, Clubs, Diamonds, Spades: Players Who Suit MUDs」에서 텍스트 온라인 게임(MUD) 플레이어를 두 축으로 나눴다. 하나는 세계를 상대하는지 다른 플레이어를 상대하는지, 다른 하나는 대상에 무언가를 하는(acting) 쪽인지 함께하는(interacting) 쪽인지다.

유형축즐기는 것
성취가(Achiever)세계에 무언가를 한다점수, 레벨, 목표 달성
탐험가(Explorer)세계와 함께한다숨은 곳과 규칙의 작동 원리 알아내기
사교가(Socialiser)플레이어와 함께한다대화, 관계, 공동체
킬러(Killer)플레이어에게 무언가를 한다다른 사람을 이기거나 괴롭히기

이 분류는 외우기 쉬워 지금도 기획 회의에서 자주 쓰이지만, 한계도 분명하다(정리).

  • 범위: 1990년대 다중 사용자 텍스트 게임의 관찰에서 나왔다. 혼자 하는 게임이나 현대 장르에 그대로 옮기면 맞지 않는 칸이 생긴다.
  • 칸이 아니라 성분: 닉 이(Nick Yee)는 MMO 플레이어 수천 명의 설문을 요인 분석해, 사람을 한 유형에 넣기보다 여러 동기를 동시에 다른 비율로 가진 것으로 보는 편이 더 잘 설명된다고 주장했다. 그 분석에서는 탐험가가 하나의 요인으로 뭉치지 않았다.
  • 검사의 출처: 널리 퍼진 “바틀 테스트”는 바틀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만든 것이고, 둘 중 하나를 고르는 문항 방식 때문에 비판을 받는다.

게이머 동기 모델: 유형 대신 점수의 묶음

닉 이가 공동 창업한 퀀틱 파운드리(Quantic Foundry)는 바틀 이후의 대표적인 대안을 내놓았다. 수십만 명의 설문 응답에서 서로 함께 움직이는 동기를 묶어, 12가지 동기를 6쌍으로 정리했다(닉 이의 글). 각 사람은 한 유형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12개 동기 모두에 점수를 가진다.

묶음두 동기
액션(Action)파괴(Destruction), 흥분(Excitement)
사회(Social)경쟁(Competition), 공동체(Community)
숙달(Mastery)도전(Challenge), 전략(Strategy)
성취(Achievement)완료(Completion), 힘(Power)
몰입(Immersion)판타지(Fantasy), 이야기(Story)
창의(Creativity)디자인(Design), 발견(Discovery)

실무에서는 “우리 게임은 어느 동기를 강하게 채우고, 어느 동기는 일부러 포기하는가”를 정하는 데 쓰기 좋다. 모든 동기를 다 채우려는 게임은 대개 어느 쪽에도 깊게 닿지 못한다. 설문 기반 모델이라 응답자가 스스로 자기를 어떻게 보는지를 재는 것이고, 실제 행동과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보상 일정: 왜 변동 비율이 가장 강한가

행동주의 심리학은 보상을 언제 주느냐에 따라 행동의 모양이 달라진다는 것을 동물 실험으로 보였다(강화 일정). 존 홉슨(John Hopson)의 2001년 Gamasutra 글 「Behavioral Game Design」은 이를 게임에 처음 체계적으로 옮긴 글로 자주 인용된다.

일정규칙나타나는 행동게임의 예
고정 비율(fixed ratio)N번 하면 보상보상 직후 잠깐 쉬고 다시 몰아서 한다20마리 잡으면 퀘스트 완료
변동 비율(variable ratio)평균 N번이지만 언제일지 모름가장 높고 꾸준한 활동, 멈추기 어렵다몬스터의 희귀 드롭, 뽑기
고정 간격(fixed interval)시간이 지나면 다음 한 번에 보상보상 직후 쉬다가 때가 가까워지면 자주 확인한다일정 시간마다 다시 나오는 보스, 작물 수확
회피(avoidance)하지 않으면 잃는다손실을 막으려고 꾸준히 돌아온다방치하면 무너지는 건물, 끊기면 초기화되는 연속 접속

홉슨도 이 글을 설계도가 아니라 입문으로 쓴다고 했고, 플레이어는 실험실의 쥐가 아니라고 못 박았다. 변동 비율은 “다음 한 번이 대박일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에 강하다. 바로 그 점이 몬스터 사냥을 신나게도 하고, 돈이 걸리면 도박과 같은 구조가 되게도 한다. 드롭 확률을 공정하게 구현하는 방법은 손맛 노트의 가중치 루트 테이블 절에 있다.

손실 회피와 그 밖의 인지 편향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과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의 전망 이론(prospect theory, 1979)이 보여 준 손실 회피(loss aversion)는 같은 크기라도 잃는 것을 얻는 것보다 더 크게 느끼는 경향이다. 게임에서는 양쪽으로 쓰인다.

  • 규칙은 같아도 말하는 방식이 체감을 바꾼다: “오래 하면 경험치가 깎인다”와 “쉬고 오면 경험치를 더 준다”는 수학적으로 같은 결과를 낼 수 있지만, 앞쪽은 벌로, 뒤쪽은 선물로 느껴진다.
  • 잃을 것이 긴장을 만든다: 죽으면 가진 것을 떨어뜨리는 규칙은 손실 회피 덕분에 탐험 한 걸음 한 걸음을 무겁게 한다. 다만 너무 크면 플레이어가 위험을 아예 피해서 오히려 재미가 줄어든다.
  • 도박사의 오류와 공정성 지각: 사람은 무작위 결과가 고르게 섞여 나오리라 기대해서, 진짜 무작위의 연속 실패를 조작으로 느낀다. 시드 마이어가 말한 “플레이어의 인식이 현실”이 이 문제다(디자이너의 생각 노트).

같은 편향은 플레이어를 붙잡아 두는 데도 쓰인다. 끊기면 사라지는 연속 접속 보상, 기간 한정 판매, 이미 쓴 돈과 시간이 아까워 그만두지 못하는 마음(매몰 비용)이 그렇다. 이 선을 넘으면 아래의 다크 패턴이 된다.

루트 박스는 왜 논란인가

루트 박스(loot box)는 돈을 내고 열어 무작위 보상을 받는 상자다. 가장 강한 보상 일정인 변동 비율에 실제 돈이 걸리고, 결과가 화려한 연출과 함께 나오며, 미성년자도 쉽게 접한다는 점에서 도박과 닮았다는 비판을 받는다. 나라마다 대응이 달라 몇 년 사이에도 상황이 바뀌어 왔다.

나라대응
벨기에2018년 게임위원회가 게임 네 개를 조사해 그중 셋의 유료 루트 박스를 도박법 위반으로 판단했다(보도). 여러 게임사가 벨기에에서 해당 기능을 껐다. 그러나 2023년 발표된 리언 샤오(Leon Y. Xiao)의 연구는 벨기에 매출 상위 아이폰 게임 100개 중 82개가 여전히 무작위 유료 상품을 팔고 있었다며 금지가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논문, 기사)
네덜란드2018년 도박청이 얻은 아이템을 밖에서 거래할 수 있는 루트 박스를 문제 삼았고, 2020년 EA에 과징금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2022년 최고 행정법원(국가평의회 행정재판부)이 FIFA의 카드 팩은 더 큰 실력 게임의 일부라고 보고 이 처분을 취소했다
영국2022년 정부가 증거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해악과의 연관성은 인정했지만 도박법을 고치지 않고 업계의 자율 조치(보호자 통제, 확률 공개 등)를 요구했다(정부 답변)
오스트레일리아2024년 9월부터 유료 루트 박스가 있는 게임은 M, 모의 도박이 있는 게임은 R18+ 등급을 받는다
한국2024년 3월 22일부터 개정 게임산업법에 따라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와 확률을 공개해야 한다(문화체육관광부 보도자료)

규제는 계속 바뀌므로, 실제로 출시할 때는 지역별 최신 규정을 따로 확인해야 한다. 디자인 쪽에서 남는 질문은 법보다 단순하다. 이 무작위 상품이 놀이를 위한 것인지, 지출을 늘리기 위한 것인지다.

다크 패턴: 플레이어의 이익과 어긋나는 설계

호세 사갈(José P. Zagal), 스타판 비에르크(Staffan Björk), 크리스 루이스(Chris Lewis)의 2013년 논문 「Dark Patterns in the Design of Games」(PDF)는 웹 디자인에서 쓰던 다크 패턴이라는 말을 게임으로 가져왔다. 만든 사람이 플레이어의 이익에 어긋나는 경험을 의도적으로 설계한 경우를 가리키고, 저자들은 비난보다 논의를 위한 틀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논문은 이를 시간, 돈, 사회적 관계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눴다.

갈래예
시간의미 없이 반복을 강요하는 노가다(grinding), 게임이 정한 시각에 접속해야 하는 약속 플레이(playing by appointment)
돈일부러 불편하게 만든 뒤 돈으로 건너뛰게 하기, 이미 들어 있는 콘텐츠를 잠가 두고 팔기, 플레이어 사이 경쟁을 지출로 부추기기
사회친구를 끌어들여야 진행되는 구조, 플레이어 이름으로 친구에게 알림을 보내는 사칭

같은 장치라도 맥락에 따라 다크 패턴이 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판단 기준은 플레이어가 그 구조를 알고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는가, 그리고 그것이 놀이를 더 좋게 만드는가 아니면 놀이와 상관없이 시간과 돈만 늘리는가다.

재미와 참여는 같은 것이 아니다

라이브 게임은 일일 활성 사용자, 잔존율, 플레이 시간 같은 참여 지표(engagement metrics)를 본다. 지표는 꼭 필요하지만, 위의 보상 일정과 손실 회피를 조이면 재미가 늘지 않아도 숫자는 오를 수 있다. 끊기면 아까운 연속 접속은 잔존율을 올리지만 플레이어가 즐거워서 돌아온 것인지는 알려 주지 않는다.

  • 지표가 무엇을 재는지 묻는다: 오래 있었다는 것은 즐거웠다는 뜻일 수도, 그만둘 수 없었다는 뜻일 수도 있다. 플레이 시간과 함께 만족도 설문, 자발적 재방문, 추천 의향을 같이 본다.
  • 욕구를 채우는가, 불안을 이용하는가: 자기결정성 이론의 세 욕구를 채워 돌아오게 하는 것과, 잃을까 봐 돌아오게 하는 것은 둘 다 잔존율을 올리지만 플레이어가 남기는 기억이 다르다.
  • 떠날 수 있게 한다: 멈춰도 벌받지 않는 구조, 끝이 있는 콘텐츠, 지출 한도 같은 장치는 짧게는 숫자를 깎을 수 있어도 신뢰를 남긴다.

지표와 플레이테스트로 무엇을 어떻게 재는지는 기획과 제작 과정 노트에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