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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액션 디자인

적과 보스, 무기, 위험과 보상으로 전투를 짜는 방법이다.

목차 (9)
  1. 적은 질문이다: 역할과 동사로 짠다
  2. 밀어붙이는 전투: 숨지 말고 빼앗아라
  3. 예고와 읽기 쉬움: 맞은 이유를 알게 하라
  4. 판정 크기는 디자인이다
  5. 위험과 보상: 다가갈수록 더 준다
  6. 얼마나 한꺼번에 덤비나: 압박 조절
  7. 스태미나와 약속: 소울라이크의 무게
  8. 보스: 배운 것을 묻는 시험
  9. 무기와 능력: 상성과 겹치지 않는 역할

적은 질문이다: 역할과 동사로 짠다

전투 디자인에서 적 하나는 플레이어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가까이 오는 이것을 어떻게 떼어낼래?”, “멀리서 쏘는 저것에게 어떻게 다가갈래?” 플레이어는 자기가 가진 동사(쏘기, 구르기, 막기, 끌어당기기)로 답한다. 그래서 적은 체력과 공격력보다 먼저 역할로 정한다. 같은 역할의 적이 둘이면 하나는 지워도 되고, 역할이 다른 적이 함께 나오면 질문이 겹쳐 전투가 깊어진다.

역할플레이어에게 묻는 것흔한 답
떼(무리, fodder)둘러싸이기 전에 정리할 수 있나광역 공격, 자원 회수 대상
돌진형거리를 지킬 수 있나옆으로 피하기, 경직시키기
원거리 견제엄폐에 숨지 않고 다가갈 수 있나빠른 접근, 정밀 사격
방패·중장갑정면이 아닌 길을 찾을 수 있나뒤돌기, 약점 사격, 상성 무기
지원형무엇부터 잡을지 고를 수 있나우선순위 정하기(먼저 잡지 않으면 다른 적이 강해진다)
위협형(엘리트)나머지를 상대하면서 이것을 피할 수 있나공간 관리, 강한 자원 쓰기

DOOM Eternal(2020)이 이 사고를 선명하게 보여 준다. Game Developer 기사에서 디렉터 Hugo Martin은 “총은 도구이고 AI는 문제”라는 팀의 말을 전한다. 예를 들어 Carcass는 플레이어 앞에 방어막을 세워 다른 적의 처형이나 로켓 사용을 막으므로 먼저 처리해야 하는 적이다. Arachnotron의 포탑, Mancubus의 팔 대포처럼 부술 수 있는 약점은 “어떤 무기로 무엇을 먼저”라는 질문을 하나 더 얹는다. Martin은 이 전투를 흔히 말하는 ‘전투 체스’라기보다 빠른 판단이 이어지는 ‘스피드 체스’에 가깝다고 했고, 다른 인터뷰에서는 플레이어가 너무 빨라진 만큼 적을 “체스 말”처럼 더 즉각 반응하게 다듬었다고 설명했다.

밀어붙이는 전투: 숨지 말고 빼앗아라

DOOM(2016)의 전투 철학은 GDC 2018 발표 Embracing Push Forward Combat in DOOM(id Software의 Kurt Loudy, Jake Campbell)에 정리돼 있다. 요약 기사대로 핵심은 당시 FPS의 관습이던 체력 자동 회복, 재장전, 엄폐를 버리고, 플레이어가 필요한 것을 적에게서 빼앗게 한 것이다.

  • 자원을 적에게 묶는다: 약해진 적을 근접 처형(글로리 킬, glory kill)하면 체력이, 전기톱으로 베면 탄약이 나온다. Eternal은 여기에 화염 방사로 방어구를 더해, 체력·탄약·방어구가 모두 적에게서 나온다.
  • 숨으면 손해: 체력이 저절로 차지 않으니 엄폐 뒤에서 기다리는 것이 해결책이 못 된다. 체력이 낮을수록 오히려 적에게 다가가야 한다. Martin의 표현으로는 “모든 문제의 해법은 공격적으로 구는 것”이다.
  • 적도 그것을 돕는다: 충분히 맞은 적은 경직(stagger)되며 빛을 내 처형할 수 있다고 알린다. Eternal에서는 숨어서 버티는 플레이어에게 적이 다가와 압박하도록 AI를 맞췄다.

이 설계의 교훈은 장르를 넘어선다. 플레이어가 원하는 행동(앞으로 나가기)을 말로 시키지 않고 자원의 흐름으로 보상하면, 플레이어는 스스로 그 방식으로 논다. 반대로 원치 않는 행동(뒤로 빠져 기다리기)이 가장 안전하면 아무리 설득해도 플레이어는 그쪽으로 간다. GMTK의 The 4 "P"s of DOOM's Amazing Combat도 같은 게임의 전투를 분석한다.

예고와 읽기 쉬움: 맞은 이유를 알게 하라

적의 공격은 보통 세 구간으로 나뉜다. 공격이 올 것을 알리는 예비 동작(wind-up, 텔레그래프), 실제로 맞는 판정 구간(active), 공격 뒤 무방비한 후딜(recovery)이다. 세 구간의 길이가 그 공격의 성격을 정한다.

적 공격은 예비 동작, 판정, 후딜로 나뉜다. 느린 강공격은 예비 동작이 24프레임이라 보고 피할 수 있고 후딜 18프레임이 반격 기회가 된다. 빠른 견제는 합쳐 17프레임이라 보고 반응하기 어렵다느린 강공격보고 반응할 수 있다46f빠른 견제거리와 예측으로 대응17f24f: 보고 피할 시간반격 창예고 6f는 사람의 반응 시간(대략 12~15f)보다 짧다010203040프레임(60fps)예비 동작(예고)판정후딜(빈틈)
같은 적이라도 공격마다 세 구간의 길이가 다르다. 느린 강공격은 예고가 길어 보고 피할 수 있고 후딜이 반격 기회가 된다. 빠른 견제는 사람의 반응 시간보다 짧아 보고 피하기 어렵고, 거리를 지키고 미리 예측해 대응해야 한다(프레임 값은 예시).
  • 예고는 보고 반응할 시간이다: 사람이 화면을 보고 반응하는 데는 대략 0.2초 남짓이 걸린다. 예고가 그보다 짧으면 플레이어는 공격을 보고 피할 수 없고, 거리나 패턴 암기로만 대응한다. 둘 다 쓸모가 있지만 섞는 비율을 의도해야 한다.
  • 신호를 여럿 겹친다: 자세(실루엣), 번쩍임, 소리, 색을 함께 쓰면 혼잡한 화면에서도 읽힌다. 화면 밖 공격은 소리와 화면 가장자리 표시로 알린다. God of War(2018)는 어깨 너머 시점으로 바뀌며 생긴 사각을 화면 밖 공격 표시로 보완했다.
  • 후딜은 보상이다: 큰 공격 뒤의 빈틈은 피한 플레이어에게 주는 대가다. 빈틈이 없는 큰 공격은 피해도 얻을 것이 없어 답답하다.
  • 지연과 페이크는 아껴 쓴다: 예비 동작을 일부러 늘리는 지연 공격은 반사적으로 구르는 습관을 벌한다. 좋지만, 예고 길이를 믿을 수 없게 되면 읽기 쉬움 자체가 무너진다.

시점이 바뀌면 이 모든 것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GDC 2019 발표 Evolving Combat in 'God of War' for a New Perspective(Mihir Sheth)가 그 과정을 다룬다. 2D 보스에서 예고의 교과서로는 GMTK의 How Cuphead's Bosses (Try to) Kill You가 좋다.

판정 크기는 디자인이다

히트박스(hitbox)는 물리 계산이기 전에 디자인 결정이다. 판정을 그림과 똑같이 맞추는 것이 공정해 보이지만, 플레이어가 느끼는 공정함은 그것과 다르다. 그래서 많은 게임이 판정을 일부러 어긋나게 둔다.

판정흔한 조정이유
플레이어가 맞는 판정그림보다 작게. 탄막 슈팅은 몸 한가운데 점 하나만 남기기도 한다“스쳤는데 맞았다”는 억울함이 “아슬아슬하게 피했다”는 쾌감보다 훨씬 크게 느껴진다
플레이어가 때리는 판정그림보다 조금 크게, 오래“분명히 닿았는데”를 줄인다. 입력 지연을 생각하면 그림 그대로는 빠듯하다
적이 때리는 판정그림 안쪽으로, 예비 동작이 끝난 뒤에만 켠다보이는 것보다 먼저, 넓게 맞으면 예고를 믿을 수 없다

판정을 몇 프레임 동안 켜고, 빠른 공격이 프레임 사이로 빠지지 않게 어떻게 쓸어 잴지 같은 구현은 물리 노트의 히트박스와 활성 프레임 절에, 맞은 순간의 손맛(히트스톱, 화면 흔들림)은 게임 필 노트에 있다.

위험과 보상: 다가갈수록 더 준다

좋은 전투는 안전한 선택과 큰 보상 사이에서 계속 고르게 한다. Masahiro Sakurai는 유튜브 채널의 Risk and Reward 편에서 Space Invaders와 Super Mario Bros.를 예로 들어, 위험을 무릅쓴 만큼 보상이 커지는 구조가 게임 재미의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전투에서 이 구조는 이런 모습이다.

  • 거리: 근접 공격은 세지만 적의 공격 범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멀리서 쏘는 쪽은 안전하지만 약하거나 느리다.
  • 타이밍: 패링(parry)은 막기보다 판정 창이 좁지만, 성공하면 반격 기회나 큰 경직을 준다. 막기는 언제나 통하지만 대가(밀려남, 기력 소모)가 있다.
  • 모으기: 차지 공격은 강하지만 모으는 동안 무방비다. 모으는 시간이 곧 위험의 크기다.
  • 자원: 체력이 낮을 때만 강해지는 능력, 처형해야 나오는 회복처럼 위험할 때 보상을 걸어 두면 위기가 역전의 기회가 된다(위 DOOM).

Sakurai는 히트스톱도 따로 두 편(Stop for Big Moments!, Eight Hit Stop Techniques)에서 다루며 대난투 스매시브라더스에서 쓴 세부 기법을 보여 준다. 큰 위험을 감수하고 맞힌 한 방은 더 크게 느껴져야 보상이 완성된다.

얼마나 한꺼번에 덤비나: 압박 조절

적 열 마리가 모두 동시에 공격하면 예고가 아무리 좋아도 읽을 수 없다. 그래서 많은 액션 게임은 동시에 공격할 수 있는 적의 수를 몰래 제한한다(공격 토큰). 이 제한은 난이도 손잡이이기도 해서, 적 하나하나를 다시 맞추지 않고 동시 공격 수만 늘려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구현과 가중치 계산은 AI 노트의 공격 토큰 절에 있다.

디자인 쪽에서 볼 것은 “압박의 모양”이다. 적이 번갈아 오면 플레이어는 한 명씩 상대하는 리듬을 배우고, 원거리 적이 근접 적과 함께 나오면 한 곳에 서 있을 수 없다. 반대로 소울라이크처럼 여럿에게 둘러싸이면 그대로 동시에 맞는 게임은 “한 번에 여럿과 싸우지 마라”를 규칙으로 가르친다. 어느 쪽이든, 플레이어가 지금 몇 명에게 노려지는지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스태미나와 약속: 소울라이크의 무게

Dark Souls 계열 전투의 무게는 두 장치에서 나온다. 하나는 약속(commitment)이다. 공격 버튼을 누르면 그 동작이 끝날 때까지 취소할 수 없어, 누르는 순간이 곧 결정이 된다. 다른 하나는 스태미나다. 공격·구르기·막기·달리기가 한 자원을 나눠 쓰므로, 공격을 다 쏟으면 피할 힘이 남지 않는다.

  • 욕심이 벌을 받는다: 한 대 더 때리려다 맞는 경험이 반복되며 플레이어는 적의 빈틈 길이만큼만 때리는 법을 배운다. 적의 후딜(위 그림)과 내 공격의 길이가 맞물려야 하는 이유다.
  • 구르기 무적: 구르는 동안 짧은 무적 시간(i-frame)을 주면 피하기는 거리만이 아니라 타이밍의 기술이 된다. 무적 시간이 길면 아무 때나 굴러도 되고, 짧으면 예고를 읽어야 한다.
  • 무게의 차이: 무거운 무기는 느리고 길게 묶이는 대신 세게 때리고 적을 경직시킨다. 가벼운 무기는 그 반대다. 같은 스태미나 예산 안에서 무기마다 위험과 보상의 비율이 달라진다.

약속이 강한 전투는 반응보다 판단을 시험한다. 그만큼 입력이 씹히거나 늦게 나가면 더 억울하므로, 선입력 버퍼(게임 필 노트)처럼 의도한 입력은 확실히 받아 주는 장치와 함께 가야 한다.

보스: 배운 것을 묻는 시험

보스전은 그 구간에서 가르친 것을 묻는 시험이다. 새 동작을 보스에서 처음 요구하면 시험이 아니라 함정이 된다. 그래서 보스의 핵심 패턴은 대개 앞선 적과 지형에서 이미 연습한 것을 더 빠르게, 겹쳐서, 섞어서 묻는다.

  • 패턴의 문법: 공격마다 고유한 예고를 주고, 같은 예고는 언제나 같은 공격으로 이어지게 한다. 순서는 섞어도 되지만 각 공격의 생김새는 바뀌지 않아야 외울 수 있다.
  • 단계(phase): 체력이 줄면 새 공격을 더하거나 경기장을 바꿔 리듬을 깬다. 앞 단계는 연습, 마지막 단계는 그 연습의 응용이 된다.
  • 쉼표: 쉬지 않고 공격하는 보스는 반격할 틈이 없어 피하기만 하는 싸움이 된다. 큰 공격 뒤의 빈틈, 단계 전환의 연출이 플레이어가 숨 쉬고 반격하는 시간이다.
  • 다시 도전하는 비용: 보스는 여러 번 지는 것이 전제다. 다시 시작하는 지점까지의 거리, 첫 패턴까지의 시간이 짧아야 시험을 다시 치를 마음이 든다(난이도·UX 노트).

무기와 능력: 상성과 겹치지 않는 역할

무기가 여럿인데 하나만 쓰이면 나머지는 장식이다. 무기도 적처럼 역할로 설계한다. 사거리, 연사, 한 방의 세기, 광역 여부, 특정 적에 대한 강함 중 무엇이 그 무기의 몫인지 정하고, 다른 무기와 겹치지 않게 한다. Hugo Martin이 DOOM Eternal에서 “모든 총, 모든 업그레이드, 모든 악마가 쓰임이 있어야 한다”고 한 것도 같은 말이다. Eternal은 방패 병사의 에너지 방패에는 플라스마, 약점에는 정밀 사격처럼 적의 역할과 무기의 역할을 짝지어, 적의 조합이 바뀔 때마다 무기를 바꿔 들게 만든다.

장치하는 일조심할 점
상성(가위바위보)적의 종류가 무기 선택을 강제한다정답 무기가 하나뿐이면 선택이 아니라 열쇠 찾기가 된다. “가장 좋은 답”과 “통하는 답”을 함께 둔다
탄약·쿨다운한 무기만 계속 쓰지 못하게 한다부족하면 짜증, 넉넉하면 무의미. 다른 무기로 넘어가는 순간이 자연스러워야 한다
능력의 조합두 능력을 이어 쓸 때 새 효과(띄우고 쏘기 등)조합이 하나만 압도적이면 그것만 남는다(시스템 노트의 지배 전략)

대전 게임처럼 사람과 사람이 겨루는 전투라면 무기와 캐릭터의 균형은 더 엄격해진다. 여러 선택지가 고수 수준에서도 살아 있게 만드는 법은 멀티플레이·라이브 서비스 디자인 노트의 경쟁 밸런스 절에서 이어진다.